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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오리 이원익 영정(梧里 李元翼 影幀)
시대/국적
한국 조선
년도
1604년
작자
용도/기능
기타 자료 기타
재질
측량
세로 167.5 가로 89.0
상세설명
이원익이 58세가 되던 1604년(선조37), 임진왜란 당시 선조임금을 모시고 피신했던 공으로 호성공신에 녹훈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정이다. 국가에 큰 공을 세운 공신에게는 훈호(勳號)를 내려주고 이와 함께 녹훈교서(錄勳敎書)와 화상(畵像)을 하사하였는데, 현재 종가에는 호성공신 화상만이 전해지고 있다. '호성선무청난 공신도감의궤(扈聖宣武淸難 功臣都監儀軌)' 이원익이 58세가 되던 1604년(선조37), 임진왜란 당시 선조임금을 모시고 피신했던 공으로 호성공신에 녹훈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정이다. 국가에 큰 공을 세운 공신에게는 훈호(勳號)를 내려주고 이와 함께 녹훈교서(錄勳敎書)와 화상(畵像)을 하사하였는데, 현재 종가에는 호성공신 화상만이 전해지고 있다. '호성선무청난 공신도감의궤(扈聖宣武淸難 功臣都監儀軌)'에 따르면 당시 이원익은 1등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극구 사양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전형적인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영정이며, 비슷한 시기의 공신도상에 비해 섬세한 묘사와 정확한 표현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에 국가문화재 보물 제1435호로 지정되었다. 에 따르면 당시 이원익은 1등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극구 사양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전형적인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영정이며, 비슷한 시기의 공신도상에 비해 섬세한 묘사와 정확한 표현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에 국가문화재 보물 제143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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